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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지우고 싶은' 기억의 조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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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3. 15.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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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멘타인은 조엘을 기억에서 지웠습니다. 다시는 그녀에게 둘의 관계를 언급 마십시오.” 영화 이터널선샤인 속 조엘은 어느 날 편지로 통보를 받는다. 사랑했던, 아니 사랑하고 있는 클레멘타인이 자신에 대한 기억을 모조리 지워버렸단 사실을. 조엘 역시 클레멘타인을 기억 속에서 지워버리기로 결심한다. 한때는 소중하고 반짝반짝 빛났던 기억들이 순식간에 한줌의 재가 되어버리는 순간. 조엘은 클레멘타인에 대한 추억들을 하나씩 지워나간다. 컴퓨터의 하드 디스크를 포맷하듯 손짓 한번으로 깨끗이 지워지면 좋으련만 그 과정은 녹록치 않다. 그래도 영화를 보며 이런 생각을 한 사람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저렇게 힘들어도 좋으니 기억을 지워주는 곳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들의 뇌 속 여기저기 문신처럼 새겨진 지우고 싶은 기억들에 신음하며 말이다.

누구에게나 지우고 싶은 기억들이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심장을 콕콕 쑤시는 아픈 기억, 조엘과 클레멘타인처럼 처음엔 반짝거렸지만 이제는 빛났던 만큼 꼭 그만큼 아픈 기억, 혹은 너무 창피해 시쳇말로 ‘이불 속 하이킥’을 날리게 만드는 기억. 그 내용과 사연은 다양하지만 분명 우리는 저마다 지우고 싶은 기억들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그런 기억일수록 왜 시도 때도 없이 의식위로 떠올라 우리를 괴롭혀 오는지. 불쑥 불쑥 의식 속으로 방문하는 이 불청객 때문에 때론 당시의 상황만큼 아프고 부끄럽고 괴롭다. 과연 우리에겐 이들을 접근금지가처분신청을 할 권리가 없단 말인가?

사실 우리는 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이들에게 스스로 접근금지가처분명령을 내린다. 배우 데이빗 카루소의 이름보다 ‘호 반장’이란 애칭이 더 친근하고, 휴 로리의 사진을 보는 순간 ‘하 박사!’란 말이 튀어 나오는 수사물 매니아라면 종종 보았을 것이다. 수사물속 등장인물들은 학대당하던 끔찍한 유년기나 배우자의 돌연한 죽음 등을 잊어버린 채 살기도 한다. (이는 프로이트가 말한 21가지 방어기제 중 ‘저항’에 해당한다.) 하지만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할 것은 우리가 이들에게 내린 명령은 ‘시효’ 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드라마 속 등장인물들은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과정 속에서 기억을 되새김질 하게 된다. 결국 우린 자신의 기억조차 마음껏 통제할 수 없는 존재이다. 하지만 우리가 나약한 인간이어서 자신의 기억조차 마음껏 주무를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기억이 의식 속에서 사라져 있을지언정 기억 속 사건들을 거쳐 온 ‘나’ 라는 존재는 이미 살아 숨 쉬는 기억, 그 자체이기 때문일 뿐. 기억을 잊고 있을지라도 ‘나’ 라는 존재는 과거의 수많은 기억의 퍼즐조각이 만들어낸 하나의 그림이다.

우리는 어떠한 기억으로 부터도 자유로울 수 없다. 하지만 굳이 자유로워야 할까? 공 선옥씨의 소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속 주인공 해금이는 친구 수경이와 경애의 죽음이란 아픈 기억을 통해 공장 노동자들의 시위에 뛰어들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28세란 젊은 나이에 요절한 화가 에곤 쉴레는 과거의 가족으로부터 무시를 받던 괴로운 기억을 통해 그의 예술 근간을 이루는 인간의 고통과 괴로움을 표현해낸 명작들을 그려낼 수 있었다. 지우고 싶은 기억들이 때론 우리를 발전시켜준다. 또한 기억 때문에 받은 상처를 치료하는 것 역시 가만히 기억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시작할 수 있다. 상처부위가 어디인지도 모르고 무슨 약을 발라야 하는지도 모른 채 치료할 수는 없는 법. 팔이 부러졌는데 다리에 마데카솔을 바른 채 새살아 돋아나라 할 순 없지 않은가? 상처를 가만히 바라보고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이는 지나간 과거의 기억일 뿐' 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이자. 그리고 기억이 말해주는 가르침을 통해 한 단계 성숙해 져야 당신은 치유 받고 성장 할 수 있다.

영화 속 조엘은 영화가 끝을 향해 갈수록 클레멘타인과의 기억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자신을 아프게 한 기억들이지만 이미 그의 일부가 되어버린 기억들을 지우는 순간은 더욱 아프기에. 우리가 기억을 지우고 싶은 것은 스스로를 사랑하기에 자신이 상처받는 것이 두려워서이다. 하지만 정말 자신을 사랑한다면 당신을 이루는 하나의 세포가 되어버린 그 기억들 역시 사랑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다만 당신이 해야 할 일은 상처를 보듬어주고 한 단계 성장해 나아가는 것. 누구에게나 아픈 기억들은 존재하지만 상처를 치료하고 기억을 통해 발전해내는 것은 개인에게 달려있다는 것을 명심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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