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더 이상은 새로운 파일을 품을 수 없다며 저장하는 족족 파일을 내팽개치는 하드를 달랠 요량으로 하드정리를 했다. 하드가 꾸역꾸역 삼키고 있던 파일 중 가장 많은 용량을 차지하는 건 영상. 다큐멘터리, 예능, 영화 등 이미 한번 본 것들은 죄다 삭제했다. 하지만 정리를 하던 중 멈칫했던 영상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영화 레스트리스. 우리에게 굿 윌 헌팅으로 친숙한 구스 반 산트 감독의 2011년 작으로 최신작이라기엔 오래되었고 오래된 영화라기엔 최신인 영화이다. 하지만 영화가 주는 울림은 꽤 크게 가슴 속에 자리 잡았기에 시의성 따위는 무시하고 소개해보련다.
레스트리스의 주인공 에녹과 애나벨은 죽음 앞에서 사랑을 시작한다. 부모의 갑작스런 죽음 이후 세상에 길들여지지 못하는 에녹은 부적응아. 부모의 죽음 이후 그는 학교를 그만두었으며 유령인 히로시를 제외하고는 만나는 친구도 없다. 이런 그의 유일한 세상과의 소통은 자신과 상관없는 타인의 장례식에 참석하는 것이다. 장례식에 가서 가만히 자리를 지키고 아무도 모르게 슬쩍 빠져나오는 에녹. 애나벨을 만난 그날 역시 뇌 암으로 어린나이에 세상을 뜬 어느 누군가의 장례식을 갔던 날이었다. 조문객으로 온 애나벨은 에녹을 보자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말을 건넨다. 에녹은 황급히 자리를 뜨지만 그 후 또 다른 장례식에서 재회하고 둘은 서로에 대한 감정을 키워나간다.
이 로맨스의 구심점에는 죽음이 존재한다. 둘의 만남은 장례식장에서 이루어 졌으며 둘의 사랑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장소역시 묘지 터였다. 에녹은 누군가의 죽음을 쫓아다니고 애나벨은 죽음에 쫓긴다. 그리고 그 둘은 함께하며 애나벨의 죽음을 준비한다. 마치 애나벨이 말한 죽음의 냄새를 쫓아 사랑을 이루는 벌레와 같은 양상이다. 하지만 레스트리스는 여타 로맨스 장르에서 죽음을 사랑의 애절함을 증폭시키는 장치로 사용해왔던 것과는 다르다. 처음부터 자신은 죽을 운명이라고 밝히는 애나벨은 자신의 작은 결점을 밝히는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그러한 애나벨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에녹의 태도는 더욱 놀랍다. 오히려 덤덤히 장례를 책임져 주겠다고 말한다. 관객의 눈물샘을 짜내려면 충분히 각 관객 당 한 바가지의 눈물쯤은 짜낼 수 있는 설정에도 불구하고 감독은 억지를 부리지 않는다. 그저 담담히 이 어린 커플이 죽음을 준비하는 모습을 비춘다. 그 모습은 둘 만의 여행을 준비하는 마냥 오히려 설레기까지 한다.
하지만 영화가 후반부에 들어서며 죽음을 준비하는 그들의 심경은 변화한다. 조금씩 애나벨의 죽음에 대한 태도가 달라지던 에녹의 감정은 결국 그녀의 죽음을 소재로 삼은 상황극에서 폭발해 버린다. 갈등의 표면적인 원인은 연극의 결말부분에 대한 작은 의견차이이지만 그것은 근본적인 원인이 아니다. 에녹은 시간이 지날수록 애나벨을 깊게 사랑하게 되었고 이제는 그녀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그는 치밀어 오르는 화를 주체할 수 없었다. 영화가 끝나갈 무렵에서야 에녹은 애나벨을 죽음으로부터 구해내고자 발버둥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뿐이다. 그녀의 곁을 지켜주는 것. 에녹이 이러한 사실을 깨닫는 순간 그는 한 단계 성장한다.
사실 그동안 에녹이 연고도 모르는 이들의 장례식을 찾아다녔던 이유는 부모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올바르게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에녹의 부모는 그가 혼수상태에 빠져있는 동안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렸다. 그가 작별의 인사를 할 새도 없이 말이다. 말 그대로 눈떠보니 생겨버린 부모의 부재를 받아들일 수 없기에 에녹은 그토록 누군가의 죽음을 쫓아다녔던 것이다. 하지만 에녹은 애나벨의 죽음을 준비하며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주고 죽음을 인정하는 법을 배운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그녀를 지켜주고 아낌없이 사랑하는 그 과정 속에서 말이다.
영화를 미시적인 관점으로 바라보면 청춘남녀의 애절한 로맨스가 보이지만 거시적인 관점으로 바라보면 에녹의 성장이 보인다. 여타의 영화들이 죽음을 사랑의 애절함을 증폭시키는 장치로 사용해왔던 것과 달리 레스트리스는 죽음과 남겨진 사람들을 조명하기 위해 로맨스란 장르를 사용했다. 영화의 결말 부분에서 애나벨을 보내며 미소 짓는 에녹의 모습은 사랑했던 사람을 떠나보냈던 혹은 떠나보낼 모든 이들에게 위로를 건넨다.
댓글 영역